엄효용 사진전
< 그날, 나무 >
2023. 03.04.~ 03.19.
사진위주 갤러리 ‘아트갤러리전주’에서는 2023년 첫 전시로 사진가 엄효용작가를 초대 전시한다. 엄효영작가는 풍경사진을 주로 작업하지만, 그의 작품을 바라보고 있으면 일반적인 풍경사진과는 달리 흡사 프랑스의 인상파 화가인 르누아르의 색채가 연상된다. 부드럽게 녹아내리는 사물의 움직임을 유연하게 표현하고 있는 엄효영작가는 일반적으로 평가하는 수없이 캡처 된 이미지의 합성사진이라고 판단하기에는 마땅치 않다. 작가는 세세하며 디테일하게 사물의 움직임을 포착하였고, 그 움직임을 프레임 안에 몽땅 담아놓았다. 작가는 어차피 시간과 공간을 하나로 보고 시공간의 흐름을 한자리에서 바라볼 수 있게 한다. 빛으로 그려내고, 그 시간과 공간성의 흐름을 초현실적인 운동감으로 그려놓은 엄효용 작가는 이번전시를 통해 그의 작품 시리즈인 나무, 숲, 하늘연작을 한자리에서 전시할 예정이다.
아트갤러리전주 / 전주시 완산구 서학로 9 <전주아트센터 1,2F >
척산로 벚꽃 봄,2021,Pigment Print on Cotton Paper,145x110cm
하추로 낙엽송 여름,2021,Pigment Print on Cotton Paper,110x145cm
2021,Pigment Print on Cotton Paper,50x75cm
독립기념관 목백합 여름,2015,Pigment PrintonCotton Paper,60x45cm,
여의천 벚나무 봄,2020,Pigment Print on Cotton Paper,120x90cm
작가노트
1. 언제부터 나무에게 시선을 주었는지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강원도 계곡에서 옮겨온 이름 모를 작은 나무,
초등학교 한쪽 켠,
딸아이와 앵두나무 아래에서 캐온 어린나무,
제주에서 비행기를 타고 날아와 싹튼 후박나무,
집근처 나무시장에서 인연을 맺은 이런저런 나무,
그렇게 베란다가 나무 화분으로 가득할 무렵
화분 속에 갇혀있는 나무들이 애처롭게 다가온다.
2. 어느 날 목천IC를 지나는 길 유난히 동그란 형태를 가진 가로수에 시선이 간다.
거대한 츄파춥스를 땅에 꽂아둔 듯한 은행나무,
각설탕처럼 모양내어진 대학로의 버즘나무,
관광지로 변모시킨 담양의 메타세콰이어,
신도시가 생기면서 이식된 가로수,
추운겨울 전지 작업된 버즘나무가 나에게 몸짓한다.
3. 강남의 어느 길을 지나 작업실을 향하는 출근길.
사고가 났는지 평소보다 체증이 심하다.
그렇게 한참동안을 움직이지 않더니 조금씩 속도를 낸다.
수많은 각양각색의 가게와 건물들……
그리고 가로수로 심겨진 은행나무……
작업실에 가까워질수록 가게와 건물은 희미하게 사라지고
은행나무의 잔상만이 머릿속에 맴돈다.
4. 평범한 매일의 일상이
어느 순간 신비로 다가온다.
이 나무들을 기억하고 싶다.
수많은 나무들의 형상을
나의 기억대로
내 방식으로.
나는 베란다에 화분을 들이고
사람들은 도심에 가로수를 심는다.
그렇게 닮아있다.
베란다 화분속나무와 거리에 심겨진 가로수.
진실의 실체가 나타날 때
반이정 미술평론가
시선과 수평에 놓인, 또는 시선과 수직에 놓인 흔하디흔한 피사체의 연속 기록이 엄효용이 전시에 내놓은 전부다. 나무와 하늘. 선택된 나무는 도심 대로변에 통상 줄지어 세워진 가로수인데, 인화지에 담긴 나무에선 가로수 고유의 규격화의 몰개성이나 조경의 손길이 지나간 인위적인 질감을 느낄 수 없이 그저 비현실적이다. 가로수 한 그루인양 보이는 나무는 품종이 같은 가로수 100-300 여점을 정교하게 중첩시켜 완성한 한 그루처럼 보이는 100-300 그루의 나무다. 한편 하늘 사진은 2009년부터 매일 기록한 연월일이 다른, 미묘하게 다른 수천 개의 하늘을 나열한 것이다. 같은 대상을 기록하되 나무 연작은 한 장 위에 쌓아올렸고, 하늘 연작은 한 줄로 열거했다. 100여 겹으로 층층이 쌓은 한 그루처럼 보이는 느티나무, 메타세쿼이어, 은행나무 벚나무 등의 모습은 각 품종별 나무의 보편성을 불명료하게 담고 있을 뿐 나무의 개별성은 지워져있다.
나무 연작은 중세 보편논쟁Controversy of Universal이라 알려진 서양철학사의 화두와 잇닿아 있다. 이 세상에는 구체적인 존재보다 그것을 아우르는 보편적 개념이 우선한다는 실재론實在論과 이에 반해 보편적 개념은 추상적인 명칭에 불과할 뿐 개별적 존재가 우선한다는 유명론唯名論의 힘겨루기를 철학사에선 보편논쟁이라 한다. 엄효용의 나무 사진을 빗대어 풀이하면, 작품 ‘원미산 독일가문비나무 겨울 2020’은 100여 그루의 개별적인 독일가문비나무들을 재현한 게 아니라, 독일가문비 나무라는 보편성을 재현한 사진이라 하겠다. 보편성을 재현한 만큼 대상이 선명하질 않다. 사진은 가시적인 대상을 재현하는 도구이기 때문에 무언가의 보편성을 기록하진 못한다. 요컨대 거실에 놓인 조명 스탠드를 찍건, 선착장에 막 입항한 크루저 호를 찍건, 하늘을 나는 참새 한 마리를 찍건, 그것은 개별적인 조명기와 호화유람선과 참새를 재현한 것이지, 조명기 호화유람선 참새 각각의 보편성을 재현했다고 보진 않는다.
도시의 길가에 일렬로 조경된 가로수의 조성 목적은 아름다운 경관을 만드는 것에 있다지만, 정작 현실에서 그 무수한 가로수의 존재감을 인식하는 이는 거의 없다. 가로수는 부지불식간에 도심 풍경을 인공적으로 구성하는 여러 단위에 하나로 이따금 지각될 뿐 각별한 인상을 주진 못한다. 그처럼 별 볼 일 없던 가로수의 존재감을 층층이 쌓아 인화지 위에 단 한 그루의 느티나무, 메타세쿼이어, 은행나무, 벚나무로 출력한 연작 속에선, 자연 사물이 아닌 인위적이고 각별한 볼거리처럼 각 나무 품종의 보편 이미지가 가공되어 나타난다. 한 점을 구성한 각 100여점의 개별 사진 속에는 정중앙에 놓인 나무의 배후로 아파트 단지며 민가 등이 원거리에서 작게 잡혀있지만, 단일 품종 나무의 보편성을 담은 한 그루의 나무 사진을 보면 아파트며 민가 같은 배경은 모두 파스텔 톤 화면에 흡수되어 비현실적인 나무의 자태를 구성하는 망점으로 대체되어 있다.
온화하고 부드러운 색조로 가공된 화면의 정중앙에는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특정 품종 나무의 보편성이 자리하고, 그 나무를 둘러싼 주변과의 경계가 희미하게 무마되면서 ‘나무가 스며든 풍경’처럼 보이는 전면화 된 화면, 구체적인 세부가 해체된 점묘화법 그림이 출현한다.
전면화 된 화풍의 전매특허는 모더니즘을 주도했던 추상회화에 있다. 엄효용의 나무 사진처럼, 추상회화도 개별 대상이나 구체적인 서사에 관한한 ‘말없는 그림’으로 일관했으며, 세계 공용어라는 미의 보편성을 취한 점까지도 서로 닮았다. 이처럼 전반적인 파스텔 톤 화면으로 개별 대상을 지워버린 작업은 엄효용의 초기작부터 나타난 바 있다. 동전, 전원 스위치, 그림 캔버스 따위의 일반 사물의 앞뒤 혹은 좌우를 한 면에 중복시켜서, 피사체를 ‘준’ 입체적으로 재현한 2010년 연작은 개별 피사체의 정면성을 직시하지 않고, 피사체의 본질을 다루려 한 점에서, 그리고 동일한 대상을 한 면 위에 중복시킨 점에서 나무 연작의 맹아 격이라 하겠다.
혈혈단신으로 착시하게 만든 종래 가로수 연작과 대비되는 2020년의 후속작업은 숲의 중심을 찍은 나무 군집 연작이 많다. 비록 여러 그루의 나무들이 포착되었으나 화면 정중앙엔 핵심 나무를 위치시켰고, 균질적인 파스텔 톤 화면이 전보다 훨씬 전면화 되어 나무의 정확한 품종을 식별하기 어렵다. ‘백두대간로 소나무 여름 2021’이나 ‘하추로 낙엽송 여름 2021’이 그런 경우다. 한편 ‘봉강가수로 메타세쿼이어 가을 2020’처럼 반복적인 이미지의 중첩은 사진에 담긴 나무를 그저 간단명료한 삼각형 도형으로 치환시킨다. 후속작업 속의 나무들은 개별적인 품종의 분류보다, 전면화 된 그림의 단계로 접어든 사진처럼 나타난다. 이는, 현상을 고스란히 옮겼던 종래의 사진 언어에서, 현상을 새롭게 가공하는 그림의 언어를 쓰는 동시대 사진의 문법이기도 하다.
실재론의 시초로 할 플라톤의 이데아론에선, 시공을 초월한 본질을 이데아로 봤고 개별 사물은 이데아의 그림자, 이데아를 모방한 복제품으로 평가 절하한다. 플라톤의 견지에서 그림이란 이데아를 모방한 복제품을 또 다시 복제한 만큼 ‘그림자의 그림자’로 과소평가 되었다.
한편 하늘 연작은 카메라 렌즈를 90도 수직으로 하늘을 바라보고 찍은 사진이어서, 하늘에서 추락하는 빗물과 눈의 모습이 평소 우리가 비와 눈의 낙하 장면을 수평으로 볼 때와는 다르게 재현되었다. 흡사 재물대에 얹은 관찰 대상을 현미경으로 본 것처럼, 자잘한 물방울이 나선형으로 확산되는 그림처럼 나타난다. 하늘 연작은 2009년 6월부터 매일 매일 찍은 하늘 기록물로 작가가 말없이 적어내린 개인 일기와 같은 것이 되었다. 이는 나무 연작에 붙인 작품 제목과 같은 효과를 주는 것 같다.
죽향대로 메타세쿼이어 가을 2015, 위례성길 은행나무 가을 2020
나무 연작 가운데 작품 두 점의 제목이다. 메타세쿼이어의 보편성과 은행나무의 보편성을 담은 이 두 사진의 제목처럼, 나무 사진 연작 모두에 나무 품종, 해당 가로수를 식목한 장소, 연도 그리고 계절이 함께 표기되어 있다. 보편성을 띤 특정 품종의 나무가 놓인 시공간을 함께 표시한 것이겠지만, 달리 말하면 그때 그 곳에 작가가 함께 있었음을 기록한 개인 일기를 제목에 반영한 것이라 하겠다. 사진에 담는 피사체들만 바뀔 뿐 반복적으로 피사체들을 같은 방식으로 기록하면서 자기 사유를 발전시키는 것일 게다.
“우리는 흔히 세상을 서로 대립되는 것으로 받아들이곤 한다... 대립 개념들이 편 가르기를 하며 이분법으로 인식되어 왔다... 하지만 서로 반대되는 것들이 실은 서로 의존하고 있음이 우주의 본래 질서라는 생각에서 나의 작업은 시작되었다... 나의 작업은 대응, 대립되는 개념(겉과 속, 앞과 뒤, 빔과 참....)들 속의 숨겨진 조화를 프레임 속에 담고자 했다.”
피사체의 일면이 아닌 중층의 면을 줄곧 담은 엄효용의 작가노트 중 일부를 옮겼다.
당도한 결론은 아마 나와는 다른 것이겠으나, 그가 사유한 시작점 만큼은 요 몇 년 사이 내가 격렬하게 경험해서 얻은 통찰과도 맞닿는다고 생각했다. 선명한 선악의 대립을 전제할 때 가치관과 세계관을 정립하기 쉬울 것이다. 세상의 갖은 갈등들 역시 지향하는 위치가 엇나갈 때 촉발된다. 단순명료한 이분법이야 말로 선동 메시지의 효과를 높인다. 그렇지만 진실이란 ‘예’와 ‘아니오’ 사이에 중층적인 스펙트럼을 지니는 걸 깊은 경험으로 알 수 있다. ‘예’의 입장이어도 20%의 ‘아니오’를 담은 유보의 입장은 우리 내면에 흔히 존재한다. 그 반대도 마찬가지고. 외국어 학습이 어려운 여러 이유 중 하나를 생각해 본다. 현지인에게 자신의 복잡한 속내를 고작 ‘예’ 아니면 ‘아니오’ 둘 중 하나만 골라 전달하는 미숙한 자신의 표현력 한계에 번번이 부딪힐 때 외국어 학습에 좌절하게 된다. 경험칙에서 얻은 진실의 실체는 파스텔 톤 그림처럼 온화하고 부드러운 나무이되, 어떤 품종인지 선명한 확신을 주지는 않는 엄효용의 사진과 닮았음을 현인이라면 알 것이다.
<약 력>
엄효용 Um, Hyo-yong 嚴孝鎔
010-8716-1971
서울특별시 강남구 신사동 647-8 b1
- 홍익대학교 산미대학원 사진디자인 전공 졸업
개인전
2022 하추로 낙엽송 여름 생활지음 갤러리, 경기도
2022 BLUR art B project, 서울
2021 진실의 실체가 나타날 때 갤러리나우, 서울
2020 봄여름가을겨울 그리고 봄 BGN갤러리, 서울
2020 봄여름가을겨울 그리고 봄 희수갤러리, 서울
2019 포레스트 인 포레스트 밀브릿지 갤러리, 강원도
2019 리틀 포레스트 2 반도갤러리, 서울
2019 리틀 포레스트 희수갤러리, 서울
2016 여기,지금,나무 역삼문화센터, 서울
2011 Faces Of Things 123갤러리, 서울
2010 The Hidden Harmony 갤러리 룩스, 서울
단체전
2022 자연으로의 귀환 예술공간 아름
2022 MY BEST SHOT COLLECTION 아주특별한사진교실
2022 뱅크아트페어 인터콘티넨탈 코엑스
2022 K포토페어 코엑스
2022 2022그라포스 비움갤러리
2022 K photo Art Fair, 코엑스, 서울
2022 패러럴 파라다이스, 메탈하우스 갤러리, 경기도
2022 서애로 아트마켓 비움갤러리
2022 노프레임마켓 아트비프로젝트
2022 더 팀프리뷰 성수 에스팩토리
2022 SHAF 인터콘티넨탈 호텔 코엑스
2022 패러럴 파라다이스 메탈하우스 갤러리
2022 또 다른 시작전 비움갤러리
2021 날씨의 맛 브레쏭 갤러리
2020 SEOUL IN MY MIND 금산갤러리
2020 HI LIGHT 서이갤러리
2020 DOLCE FAR NIENTE 비움갤러리
2020 PLAS 코엑스
2020 KAMA 부산벡스코전시장
2019 2019 TOGETHER 광주비엔날레전시관
2019 AHAF 인터콘티넨탈호텔
2018 THE SCENT OF WOOD 신세계갤러리 센텀시티점, 부산
2018 그것 그곳 그때 연우갤러리
2018 KIAF COEX
2018 AHAF 인터콘티넨탈호텔
2018 아침에 먹는 사과같이 전 갤러리나우
2018 An'C H Art Fair 현대백화점, 서울
2018 몰입.망각;경계 금산갤러리
2017 Special Present 2018 사이갤러리
2017 SPOON ART SHOW 킨텍스
2017 니가타국제도모다찌전 니가타갤러리, 니가타
2017 LOOK INSIDE 2인전 사이갤러리
2017 미묘한 풍경 ID갤러리
2016 우리들, 나무들 여니갤러리
2012 또 다른 목소리 갤러리 나우
2011 spring&flower전 현대백화점 신촌점 뉴플렉스
2009 서울포토2009 COEX
2007 선택된 우연 갤러리 와 청담
2006 국제 사진페스티발 영포트폴리오전
2006 Korea Photo Fair 인사동 쌈지길
2006 Who’s Who전 현대백화점 압구정점 6층 하늘공원
2006 Stillness 갤러리룩스
2005 바다네품에안기다 갤러리라메르
2004 사물과 상상 갤러리룩스
2004 5*7전 그린포토 갤러리
2001 사물과 상상 갤러리룩스
2001 Post photo 올리브갤러리
2001 생명포스터전 생명포스터연구소, 원주
2000 Post photo sk갤러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