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범진 사진전     방황(彷徨)

                     2022.11.23 ~ 29

《방황(彷徨)》

Kong Fanzhen

동물은 갇히고, 사람은 격리되고, 나는 둘 사이에 있다.

《방황(彷徨)》은 자신의 지난 삶을 되돌아보는 것으로, 사진이라는 매체를 통해 생활 속에서 보호받고 사랑받는 것에 대한 여러 가지 막막함을 표현한다.동물원의 동물을 피사체로 삼아 사유의 기탁와 소리 없는 절규를 표현한다.

방황은 중국어의 정의에서 종종 배회, 망설임, 방향이 없으며 안절부절못하고 마음이 불안함을 나타냅니다. 남존여비,남성을 중시하고 대를 잇기로 한 것은 중국이 예로부터 약속했던 속된 것이다, 나의 가문은 나의 세대에 이르기까지, 나의 위와 아래는 모두 누나와 여동생이고 오직 나 하나만이 남자 있다.어렸을 때, 나는 이 가족적인 요인으로 인해 여러 방면에서 보호와 사랑을 받았습니다.

나 혼자 받은 관심과 사랑, 정말 행복한 일이었을 텐데…. 그 사랑이 도를 넘었을 때, 그 사랑은 나에게 변질되었다. 아무것도 하지 못하게 하고, 언제나 직접 경험하지 못하고, 밥이 오면 입을 벌리고, 옷이 오면 손을 뻗는 '편안한 생활'을 하고, 이런 보호, 혹은 관심은 나의 외부와의 접촉을 박탈한다.이런 배려가 나도 모르게 삶에 대한 향수와 생존에 대한 기본 상식을 잃게 만들었다는 것을 몇 년이 지나서야 깨달았다.이런 보호, 이런 관심은, 어깨 위의 무거운 배낭처럼, 내가 숨을 쉴 수 없을 정도로 무겁다.

누군가 관심은 위대하다고 하지만 나는 불안감을 느끼고, 그런 삶은 나를 숨쉬게 한다.나는 동물원에 갇힌 동물들처럼 구경도 하고 보호도 받고 우리에 갇혀서 그 작고 소리 없는 항의를 할 수 없었다. 사스 때의 인상이 희미해졌지만 2019년 말부터 시작된 코로나19 발생 이후 2022년까지 중국과 한국을 오가며 다양한 격리 정책을 반복했다. 코호트 격리, 병원 내 전담 격리, 자가격리 등이다.7일, 14일, 21일, 두 달…. 끝없는 격리 생활은 나를 집에서 오래 머물게 했고, 하루 세 끼를 기다리며, 각종 통지를 기다리게 했다.이런 무미건조한 격리 속에서 나의 지난 생활은 마치 내가 떠나지 않은 것처럼 주마등처럼 머릿속을 스쳐갔다. 어릴 적 기억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 같다.

격리가 끝날 때마다 나는 특별한 허가를 받은 것처럼 바깥 공기를 크게 들이마신다. 뉴스 속, 인터넷 속 정보를 보면서 이 시대의 신생아들 격리되는 데 익숙하고 마스크 쓰는 게 익숙한다. 이런 불안정한 생활은 내 마음에 의문을 품게 한다. 가다 서다 몇 년 만에 동물원을 찾았는데 어린이들의 몸과 마음을 즐겁게 하는 동물들이 신나게 뛰어다니며 뛰어다니는 모습은 사라지고, 그 대신 우리에 오래 갇혀 정형 행동(stereotyped behavior)을 하는 동물들이 보였다. 우리 가장자리를 무작정 오가는 동물들과 동물원의 갖가지 자연환경을 가장 실감나게 본뜬 모습을 보면서 가장 실감나는 환경을 흉내내도 마음의 공백을 메울 수 없다는 감탄이 절로 나온다.

동물원에서 동물을 보호하기 위해 우리에 갇힌 동물, 가족에서 과잉보호된 나, 전염병 상황에서 사람에 대한 강압적 격리정책, 불안, 막막함, 작은 것을 통하여 큰 것을 보고 인간과 동물과 사회에 어떤 공통성이 존재하는지, 이러한 공통성은 내 안의 불안과 막막함을 원동력으로 만들어 이 작업의 출발점이 되었고, 사진이라는 매체를 통해 내 안의 불안과 막막함을 시청각 언어로 표현하고 싶어 동물의 입을 빌려 자신의 삶에 대한 방황을 호소합니다.

나는 동물원에서 항상 생각하고 새장을 사이에 두고 동물을 바라볼 때 우리의 눈에는 갇힌 동물이 비친다.태어나자마자 우리에 갇힌 동물들이 우리를 바라보며 눈에 비치는 것은 무엇일까?